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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스 엔딩 해석] 아르준이 마주해야 할 진실: 왕의 정체와 두 가지 결말, 그리고 진엔딩 보는 방법 *스포 및 스압주의 *

겜탐사대장 2026. 5. 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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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콘솔 게임 정보르 전하는 게임탐사대입니다.

 

오늘은 장장 30시간만에 엔딩을 본 사로스의 엔딩 해석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다들 난해하다는 평이 많은데, 저에겐 베스트셀러 소설을 한편 읽은 듯한 기분 좋은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스포주의** 이 글에는 본편의 모든 결말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게임을 끝내지 않으신 분들은 뒤로가기를 권장드립니다. 하지만… 읽어도 이게 스포일러일까 싶을 정도로 복잡하니 참고해서 읽어주세요.

 

'사로스' 단어의 의미

 

먼저 게임의 제목 '사로스'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로스는 천문학 용어로 약 18년 11일 8시간(약 6,585.3일)을 주기로 태양, 지구, 달이 거의 같은 상대 위치로 돌아오는 일·월식의 반복 주기를 가리킵니다. 한 사로스가 지나면 이전과 거의 동일한 형태의 일식 또는 월식이 다시 발생합니다.

 

 

즉 사로스는 단순한 '주기'가 아니라, '같은 그림자가 시간을 두고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회귀의 메커니즘 그 자체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의미는 게임 전반의 구조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카르코사 행성을 뒤덮은 영원한 일식, 죽고 다시 깨어나는 아르준의 로그라이크 사이클, 그리고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황색의 사슬'까지 사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되돌아오는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회귀'와 '영원히 반복되는 어둠'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아르준이 에셰론 IV에서 부여받은 임무

 

 

주인공 아르준 데브라지는 솔타리 소속 집행관입니다. 행성 카르코사로 떠난 첫 식민 개척단 '에셸론 I'의 행방을 조사하고 그들을 회수하는 임무를 띠고 파견됩니다. 

 

표면적인 임무는 분명합니다. 카르코사에서 사라진 동료들의 운명을 밝히고 살아남은 자가 있다면 데려오는 것.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이 임무는 점점 다른 색을 띠기 시작합니다. 에셸론 I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은 그가 한때 사랑했고, 자신을 떠난 연인 '니티야'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르준의 진짜 임무는 두 겹으로 갈라집니다. 표면적으로는 식민지 회수 작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을 떠난 연인을 다시 손에 넣고 싶다는 개인적 집착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이 두 동기 사이의 균열이야말로 게임이 결말부에서 폭로하는 가장 중요한 비밀입니다.

 

솔타리 집행관: 식민 개척의 그늘

 

게임의 세계관에서 '솔타리'는 아르준이 소속된 조직의 이름이자, 그가 사용하는 핵심 방어 시스템 '솔타리 실드'의 어원입니다. 솔타리는 카르코사 같은 변방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인력을 파견하는 일종의 군사·산업 복합 조직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게임이 보여주는 솔타리의 식민 개척은 결코 영웅적인 프런티어 서사가 아닙니다. 에셸론 I은 카르코사에서 황색의 영향에 침식되어 지휘관 아놀드가 새로운 왕이 되는 것으로 끝났고, 다른 동료들은 변이된 괴물이 되거나 영혼만 남은 존재로 떠돌게 됩니다. 솔타리의 식민 개척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자양분으로 삼는 우주적 존재에게 인력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비극의 회로였던 셈입니다.

 

 

이는 19세기 식민주의 서사가 가졌던 광기, 부패, 자기 파괴의 이미지를 우주적 호러로 재해석한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지의 땅에 발을 디딘 정복자가 자신의 욕망에 잡아먹혀 결국 그 땅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콘래드적 구조인거죠. 사로스의 식민 개척은 그 SF 버전입니다.

 

니티야의 존재, 그리고 아르준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것

 

 

니티야는 에셸론 I의 일원으로 카르코사에 첫 발을 디딘 인물 중 하나이자, 한때 아르준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르준에게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카르코사로 떠났습니다. 즉 니티야의 카르코사행은 임무라기보다는 도피였고, 그 도피의 대상은 다름 아닌 아르준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카르코사에서 동료 키이라와 사랑에 빠졌고, 황색의 영향에 침식된 동료들과 달리 끝까지 저항하며 두 가지 장치를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죽었을 때 다시 살아나도록 돕는 '프리서버', 다른 하나는 황색 해변으로 향하는 길 자체를 차단하는 AI 컴퓨터 '콘스탄트'입니다. 니티야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카르코사의 무한한 왕의 사슬을 끊으려 한 능동적 저항자였습니다.

 

 

 

아르준에게 니티야는 '되찾아야 할 사랑'이지만, 게임이 결말로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그가 사랑한 것이 진짜 니티야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그녀의 환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메인 엔딩에서 그의 곁에 나타나는 니티야는 황색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며, 시크릿 엔딩에서야 비로소 그는 진짜 니티야와 마주하게 됩니다. 니티야는 아르준의 욕망이 투영된 거울이자, 그 욕망의 끝에서 그를 구원하거나 파멸시키는 시험대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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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클럽과 침대


 

 

게임 초반과 메인 엔딩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장소는 지구에서 아르준이 자주 드나들던 클럽, 정확히는 매춘업소로 묘사되는 공간입니다. 이곳은 그의 부도덕한 과거, 특히 니티야와의 관계 중에도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던 외도의 현장입니다.

 

 

메인 엔딩에서 황색 해변의 결투를 끝낸 아르준이 결정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공간이 바로 이 클럽의 한 객실입니다. 거기서 그는 니티야를 찾지만 만나는 것은 자신의 비웃는 거울 속 모습뿐이며, 그 거울이 그를 공허 속으로 잡아당깁니다.

 

즉, 클럽과 침대는 단순한 회상 배경이 아니라, '아르준이 절대로 마주하기 싫어 외면해 온 죄책감의 핵심 좌표'입니다.

 

게임이 결말부에서 이 공간을 다시 끌어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황색이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미끼는 거대한 권력이나 환상의 미래가 아니라, 그가 가장 부끄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끊지 못한 욕망, 외도의 침대, 그 자체입니다. 가장 익숙한 죄가 가장 강력한 사슬이 되는 셈입니다.

 

키이라와 솔타리 실드: 엔딩으로 가는 핵심 요소

 

 

키이라는 에셸론 1의 일원이자 니티야가 카르코사에서 사랑에 빠진 인물입니다. 황색의 영향으로 본체는 잃었지만 영혼의 형태로 남아 황무지의 거대한 붉은 나무 곁에서 아르준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만남은 시크릿 엔딩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키이라가 아르준에게 전하는 진실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니티야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 둘째, 황색은 니티야에게 닿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푸른 절벽의 가장자리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키이라는 단순한 NPC가 아니라, 아르준의 자기기만(니티야가 자신 외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진실의 전령입니다.

 

 

그리고 아르준의 슈트에 장착된 '솔타리 실드'는 게임의 핵심 방어 메커니즘입니다. R1 버튼을 눌러 활성화하면 아르준을 데미지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특정 적의 황색 투사체를 흡수해 자신의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충전이 가득 차면 L2 적응형 트리거를 끝까지 당겨 강력한 특수 무기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게임플레이상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적의 공격을 잘 받아내야만 더 강해지는' 시스템은 본 게임 전체의 도전 정신을 압축한 메커니즘이며, 회피 일변도가 아닌 적극적인 위험 감수를 보상합니다.

 

하지만 서사적으로 읽으면 더 깊은 층위가 보입니다. 슈트는 '황색을 자신의 힘으로 변환하는 도구'입니다. 즉 아르준은 처음부터 적의 본질(황색 = 부패한 욕망)을 자기 안에 흡수하면서 싸우는 존재입니다. 이는 결말부에서 그가 결국 황색의 왕으로 변모하는 메인 엔딩과 맞물려 의미심장한 복선이 됩니다. 그가 황색을 무기로 쓰는 한, 황색은 언제든 그를 잠식할 수 있습니다.

 

 

동료들이 보여주는 것, 패시지라는 거울방

 

매번 죽을 때마다 아르준이 돌아오는 패시지에는 그의 팀원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게임이 '죽음을 서사 진행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아르준이 죽으면 죽을수록 동료들과의 대화, 오디오·텍스트 로그, 본거지의 미세한 변화 등 더 많은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동료들은 단순한 NPC가 아니라 아르준이 잊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의 단면들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인물은 세바스찬 토레스로 카르코사에서 거대한 나무를 돌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옛 친구입니다. 그러나 시크릿 엔딩으로 가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납니다. 토레스는 지구에서 아르준이 살해한 동료였고, 카르코사의 토레스는 아르준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혹은 일식의 장난)이라는 것입니다.

 

 

아르준이 토레스를 죽인 이유 또한 가벼운 분쟁이 아닙니다. 아르준의 외도 사실을 니티야에게 폭로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동료들은 아르준의 임무 동반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가 외면해 온 죄책감의 화신들입니다.

 

하나의 흥미로운 디테일안 토레스만이 게임 내 데이터베이스(인물 도감)에 등재되지 않는 유일한 캐릭터라는 점으로 그가 '실재가 아닌 환영'임을 암시하는 장치로 분석됩니다.

 

황색 해변... 내 자신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

 

왕이 있는 황색 해변은 게임 내에서 단순한 지명이 아닌 '욕망과 갈망을 관장하는 우주적 존재'로 묘사됩니다.

 

 

게임 내 텍스트 로그에 따르면 황색은 사람들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풀리고 왜곡해 그 끝으로 끌어들이는 신적 존재이며, 그 정점에 도달한 자는 이전의 왕을 살해하고 새로운 왕이 됩니다. 이 과정 자체를 게임은 '황색 해변으로 가는 길'이라 부릅니다.

 

황색 해변에서 아르준이 마주하는 환영들은 단순한 호러 연출이 아닙니다. 그를 학대하던 아버지의 잔상, 끊임없이 손짓하는 니티야의 모습, 외도의 침대, 자신이 죽인 토레스까지... 이 모든 이미지는 황색이 그의 가장 약한 지점을 정확히 겨냥해 만들어낸 미끼입니다.

 

 

황색은 욕망뿐 아니라 트라우마까지도 함께 퍼올려 인물을 그곳으로 끌어당깁니다. 주목할 점은 황색 해변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성격입니다. 그것은 '아르준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아르준이 되어버린 모습'입니다.

 

학대받은 아이가 결국 학대하는 어른이 되었고, 사랑했던 여인을 소유하려는 집착의 화신이 되었으며, 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황색의 진짜 무기는 환상이 아니라 '직시하지 못한 진실'이며, 해변은 그 진실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좌표입니다.

 

이 점에서 황색 해변은 카르코사의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심리학적입니다. 외계 행성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르준의 내면 풍경이며, 황색 자체가 그의 부패한 욕망의 외화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결말 '왕이 된다는 것'의 의미 (메인 엔딩)

 

 

메인 엔딩(이른바 '기본 엔딩')에서 아르준은 황색 해변의 끝에서 노란 왕을 쓰러뜨리고, 쓰러진 왕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합니다. 그리고 황색의 장벽 너머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는 지구에 있는 한 객실로 돌아갑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미소가 그를 공허 속으로 잡아당기고, 깨어난 곳에서 니티야가 그에게 옥좌에 앉을 것을 권합니다.

 

 

그 순간 그의 손은 불타오르고 눈은 변하며, 그는 새로운 왕이 됩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이 장면 전체가 황금색 에너지의 한 가닥에 담겨 있고, 주위에는 비슷한 가닥들이 무수히 늘어져 있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 결말의 의미는 두 층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층위는 아르준은 부패하여 다음 왕이 되었고, 곁에 있는 니티야는 진짜 니티야가 아니라 그를 옥좌까지 유인하기 위한 황색의 환영입니다.

 

 

주위의 무수한 황금 가닥들은 아르준이 단지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사슬의 다음 고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게임은 이를 '왕이 다음 왕에게 죽고 그 왕이 또 다음 왕에게 죽는, 영원히 반복되는 살해의 회로'입니다.

 

두 번째 층위는 더 잔혹합니다. 카르코사에서 시간은 탄성을 가지며 모든 왕들이 '동시에 그리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묘사가 있고, 아르준이 패시지에서 죽고 다시 깨어나는 사이클 자체가 '그가 곧 이 모든 왕들이며, 자신을 무한히 살해해 온 존재일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즉 그는 다른 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매번 다른 얼굴의 자기 자신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욕망에 굴복했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 권력, 옥좌, 영원히 곁에 머무는 환상의 연인을 모두 손에 쥔 순간, 그는 한 인간이기를 멈추고 욕망 그 자체의 화신이 됩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원한 사슬에 한 가닥으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이 메인 엔딩이 게임의 진짜 본질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고문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자는 자기 자신을 잃는다.'

 

두 번째 결말: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 (진엔딩)

 

시크릿 엔딩(이른바 '진엔딩')에 도달하기 위해 아르준은 일련의 진실들과 차례로 마주해야 합니다.

 

키이라로부터 니티야가 자신이 떠난 후 다른 사랑을 찾았다는 사실을 듣고, 니티야의 연구실에서 홀로캐시 기록을 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토레스를 살해했다는 진실. 그것도 외도를 들킬까봐 친구를 살해했다는 가장 추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리고 다시 황색 해변으로 향한 그는 이번에는 왕을 쓰러뜨린 뒤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지 않고, 옥좌도 거부하며, 장벽 너머로 걸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일식이 그를 다시 변형시키려 하는 순간 그는 니티야와의 관계의 상징인 태양 펜던트를 뜯어내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변형은 멈추고, 진짜 니티야가 그의 곁에 나타납니다.

 

 

니티야는 그에게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다, 이곳은 내 꿈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르준은 그녀를 잃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니티야는 그가 한 일은 되돌릴 수 없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하루가 왔는데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고 물은 뒤 조용히 떠나갑니다. 마지막 컷, 해변에 홀로 선 아르준의 얼굴 위로 푸른빛과 붉은빛이 깜빡입니다. 마치 경찰차의 경광등처럼.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크릿 엔딩이 보여주는 구원은 '연인을 되찾는 것'이 아닙니다. 아르준이 깨달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 펜던트를 던지는 행위는 그녀를 놓아주는 의식이며, 소유하려는 욕망을 자기 안에서 죽이는 의식입니다. 황색이 그를 왕으로 만들 수 없는 이유는, 더 이상 그의 안에 황색이 잡아챌 부패한 욕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푸른빛과 붉은빛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아르준이 자신의 죄를 완전히 자각했음을 상징하는 비유.

(2) 그가 언젠가 지구로 돌아가 경찰에 자수할 것이라는 예언.

(3) 카르코사 자체가 니티야를 잃은 아르준이 만들어낸 술 취한 환각, 혹은 거대한 메타포.

 

어느 해석을 택하든 결론은 같습니다. 진짜 구원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책임의 인정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게임 내 아르준 본인의 오디오 로그 중에는 '푸른빛과 붉은빛, 그리고 그것을 동반하는 노래는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가 줄곧 자기 안에서 누르고 있던 죄책감을 마침내 받아들이는 순간, 그 경광등은 처벌의 두려움이 아니라 마침내 도착한 책임의 신호로 빛납니다.

 

 

한 줄 정리

 

 

사로스는 결국 '욕망의 사슬을 어떻게 끊을 것인가'에 관한 게임입니다. 18년마다 그림자가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일식의 주기처럼, 인간의 욕망 또한 끊지 않으면 영원히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메인 엔딩이 욕망의 충족이 가져오는 영원한 노예 상태를 보여준다면, 시크릿 엔딩은 그 사슬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즉 사랑하는 대상을 놓아주는 용기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의 인정을 보여줍니다.

 

 

하우스마크는 이 작품에서 단순한 후속작 이상의 야심을 보여줬습니다. 리터널이 모성과 트라우마의 영원한 회귀를 다뤘다면, 사로스는 욕망과 죄책감의 영원한 회귀를 다룬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로그라이크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장르적 본질을 서사의 본질로 끌어올린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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